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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그리고 상징주의

by Linda J 2022. 11. 10.

미술사에서 낭만주의자들과 항상 비교되는 대상은 신고전주의자들입니다. 신고전주의자들은 정해진 규칙을 좋아했고, 넘치지 않는 절제를 하였으며, 꼼꼼히 계획한 후에만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빈틈이 없었고 붓 자국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묘를 중시했으며 색상도 절제해 사용했지만, 낭만주의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했습니다. 18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시작된 낭만주의는 문학과 예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전에는 인간의 이성과 형식을 강조했으나 낭만주의는 감정과 직관, 주관적인 느낌의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강렬한 색책와 명암으로 역동성과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낭만주의 대표 화가는 외젠 들라크루아입니다. 들라크루아의 작품은 말이 없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대화하는 것 같은 감정을 교감합니다. 많은사람이 들라크루아에게 존경심을 표현했던 이유는 아마도 작품 속에 열정이 느껴져서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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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개혁에 실패한 프랑스에 불경기가 찾아옵니다. 서민들과 노동자들의 생활은 어려워졌고, 그들은 정치인들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몇몇 화가들은 과거에서 벗어나 지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주의 시대입니다.

사실주의 시대를 연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인기 화풍이었던 신고전주의가 거짓을 그린 현실도피 작품이고, 꾸밈없이 현실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그린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돌 깨는 사람들', '시장에서 돌아오는 플라지의 농부들' 등을 보면 제목조차 평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흐는 존경하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했습니다. 밀레의 그림을 보고 나름의 구도와 색채를 만들어 자신만의 그림을 탄생시켰습니다. 고흐에게 밀레는 감동을 주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자 농민의 현실을 사실대로 그려 낸 존경스러운 화가였습니다. 밀레는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그뤼시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라며 직접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그에게 농사와 농부는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밀레는 '농부의 화가'로도 불립니다. 

 

유명한 작품인 '이삭 줍는 사람들'의 그림은 사실 조금 슬픈 내용입니다. 그림의 분위기는 일하는 아낙네들을 평화롭게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추수가 끝난 밭에서 끼니를 잇기 위해 떨어진 이삭을 주우며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을 그린 것 입니다. 밀레는 가난하고 비참했던 농부들의 삶을 자신만의 시각을 통해 경건하고 평화롭게 완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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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이고 신비한 주제를 다루는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초월하여 일반적인 사실에 작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하고 이에 주관적인 요소들을 접목시켜 풀어냅니다. 19세기 중엽, 전통을 중시하던 아카데미즘 화가들은 정해진 형식에 따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사실을 중시했던 쿠르베, 밀레 등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화가들은 눈앞에 보이는 순간의 빛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때 프랑스의 귀스타브 모로는 홀로 내면의 모습을 그려내었습니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자신의 상상을 통해 완전히 재구성하였고 상상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이 화가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화풍의 기반이 되어 20세기 회화의 시작에 큰 기여를  합니다. 그는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서 교수로 지냈는데, 그때 다른 교수와 달리 학생들에게 자신의 개성에 맞는 그림을 그리도록 권유합니다. 특히 유명한 제자로는 앙리 마티스가 있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야수파의 대표 화가로 불리며 사람을 녹색 또는 파랑으로 표현하고 색채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모로는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종교적인 관념이나 신화를 독창적으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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