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사람들은 문화와 예술의 발전과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을 배출했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종교가 있었던 중세 시대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차차 사람들은 인간 중심의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됩니다. 특히, 1440년경에 발명된 활자 인쇄는 사람들의 지식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이와 함께 미술 분야의 혁신도 훌륭했습니다. 중세 화가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루첼라이의 성모'와 르네상스 화가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전에는 원근법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사초는 처음으로 원근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화가로 이 작품이 그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르네상스 화가는 화가이자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해부학자, 건축가였습니다. 못 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죠. 르네상스의 분위기는 자유로웠습니다. 대표적으로 다 빈치는 기마상의 의뢰받고 도나텔로의 '가타멜라타 기마상'을 뛰어넘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말을 해부하였습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정확한 사람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30구 이상의 인체를 해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지식이 결국 '모나리자'라는 대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렇듯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의 창의적인 미술의 시작이었습니다.
15세기 피렌체의 대부호였던 그들은 유망한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들이 대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재정적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유명한 미켈란젤로 역시 그들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그 후원자들이 바로 '메디치 가문' 입니다. 그 당시 메디치 가문은 무역업과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피렌체 권력의 중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을 지원하여 그들의 지식과 예술품을 통해 가문의 명성을 높이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뿐만 아니라 다 빈치, 도나텔로, 보티첼리 등 그 도움을 받지 않은 예술가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메디치 가문은 부와 권력을 얻게 되어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이탈리아의 산드로 보티첼리입니다. 보티첼리는 우아한 곡선과 미묘한 색 대비, 그리고 탁월한 구성을 바탕으로 그림의 주제를 부각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보티첼리는 신화나 시 그리고 성서의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내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화가였지만 동시에 의학자, 수학자, 건축가, 기계공학자, 군사 전문가였습니다. 다 빈치는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제자들에게 원근법, 해부학, 식물학 등을 가르치며 뛰어난 화가로 성장해 갔습니다. 다 빈치는 평생 20여 개의 작품밖에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왕성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모나리자' 작품만 보더라도 손에서 보이는 다 빈치의 해부학적 지식의 정확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다 보니, 작품을 제때 완성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모나리자'도 사실 미완성 작품입니다. 그는 평생 다방면으로 연구와 작품활동을 하며 살았고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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