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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fe

위기의 로마 미술에서 비롯된 비잔틴 미술

by Linda J 2022. 9. 14.

#1 콜로세움 이야기

당시 로마에는 1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었고 그 중 로마 시민들은 대부분 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에는 광대한 영역의 속주들이 있었고, 속주민들이 다 세금을 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범죄와 폭동들이 많아져서 골머리를 앓던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는 생각해 냈습니다. "쇼하자. 저 할 일이 없는 시민들이 몰입할 수 있는 아주 자극적인 쇼를 하자." 이것이 콜로세움의 탄생 배경입니다. 특별한 일거리가 없는 로마인들의 범죄율을 낮추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극제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정치인들의 통치 목적의 하나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콜로세움은 로마 시민의 염원이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었으나 예술가들의 기막힌 아이디어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들은 아치를 정말 잘 활용했고, 콘크리트, 붉은 벽돌, 기중기 등을 개발하며 5만명에서 8만명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했고 그늘막 배수시설까지 완비된, 엄청난 대형 경기장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2 힘과 사치의 로마 미술

그리스 미술은 아름다움을 위한 창조라고 보면 로마 미술은 정치적 목적이나 사치품이 대부분입니다. 또한 로마 하면 흉상이 떠오릅니다. 먼저 콜로세움의 아이디어를 낸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흉상을 보면 인상이 찌푸려져 있고 대머리와 주름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눈 밑은 축 처져있고, 꽉 다문 입 덕분에 턱 밑 살은 더욱 늘어져 보입니다. 조금도 미화시키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흉상이 이렇습니다. 고대의 로마는 강력한 힘이 있어야 모든 것이 주어지는 사회였습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여자든 힘으로 싸워 뺏어야 합니다. 이렇게 로마는 힘이 법이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모든 흉상은 미화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로마 사실주의 미술이라고 말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굳이 외모를 미화해서 꾸밀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상의 생긴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어서 실제 권력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그 당시 로마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또한 로마의 많은 귀족은 힘들게 돈을 벌어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부자가 되자 사치하게 됩니다. 이것이 쾌락으로 이어지며 도덕은 무너져갔습니다.   



#3 비잔틴 미술


로마는 광대한 영역을 오랜 시간 동안 지배하던 거대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국들도 점차 싸우는 법을 배우게 되며 로마를 공격하고 괴롭힙니다. 특히 게르만족이 그랬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위기의식으로부터 탈피하고자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도덕의 문제를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해결하려고 합니다.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여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통해 타락한 로마의 윤리와 도덕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동서양 무역의 중심지인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멀리 옮겨서 전쟁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바로 이 비잔티움이라는 도시에서 발전한 미술이 비잔틴 미술입니다.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직접 비잔티움을 다니며 도시 계획을 세웠고, 뛰어난 로마의 토목건축 기술이 결합하여 비잔틴 미술이 시작됩니다.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의 벽면 모자이크


기독교가 공인이 되면서 사람들이 예배당이 필요했습니다. 초기의 교회인 이탈리아의 라벤나에 있는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을 보면 여러 기둥이 지지하고 있는 벽면에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세 단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은 맨 아래에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지키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맨 위에는 모두 예수의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그림들이 비잔틴 미술의 특징입니다. 교회로부터 발전했고, 성경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죠. 그 그림들은 모두 모자이크로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자이크라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성스러움을 표현하고 모자이크에 색유리 조각을 넣어 빛에 따라 반짝이게 그려놓았습니다. 이것이 비잔틴 미술의 특징입니다. 

도시 비잔티움의 이름이 콘스탄티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로 바뀌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또다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로 바뀌었습니다.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비잔틴 건축물은 하기아 소피아입니다. 이스탄불의 랜드마크인 이곳은 사방으로 뾰족한 4개의 탑이 서 있고, 가운데는 사각형 건물 위에 커다란 돔이 있습니다. 비잔티움이 동서양의 중심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가 겹쳐 독특한 성당이 생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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